일의 목적이 생계유지가 아니라 자아실현이라면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
미래의 일자리를 찾는 이에게 유엔미래포럼 박영숙 대표가 건네는 질문이다.
일의 의미가 달라지는 미래
일에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데, 슬픔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고단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하는 목적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현대사회에서 일이란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때 우리는 고단함을 상쇄하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일의 의미와 가치가 크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생계유지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노동을 대체하고, 국민 모두에게는 일하지 않아도 충분한 금액의 생계유지비가 지급된다. 일부 기업이 내는 10%의 세금이 90%의 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본소득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노동의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일은 선택하는 시대, 미래학자 박영숙 대표가 내다본 2030년의 풍경이다.
사회 구성원 역할을 하는 워크
핀란드, 네덜란드, 미국 알래스카 등 여러 선진국에서 실험했거나 운영 중인 기본소득제는 국가가 국민의 생계를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 제도다. 국내에서도 논의 중인 이 제도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할 수 있지만, 재원 부족과 노동력 감소를 야기할 수 있어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국가의 사례를 보면 국민 만족도 부분에서 좋은 결과를 보였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본소득제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사회 구성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생활이 여유로워지면 사람들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섭니다. 미래 사회에서는 노동하는 잡(job)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워크(work)를 더욱 중요시할 겁니다.”
일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바뀌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이 학위다. 영국 마케팅 에이전시 버브서치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0대 자수성가 부자 중 학사 학위 보유자가 가장 많았으며, 두 번째가 대학 또는 고등학교 중퇴자로 25%의 비율을 차지했다. 석사 학위 보유자는 20%, 박사 학위 보유자는 5%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역시 대학을 그만두고 창업해 부호가 된 대표 인물이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자신이 만든 벤처 학교에서 20세 이하 청소년에게 창업 자금을 지원한다. 조건은 2년간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이다.
첨단 기술로 바뀌어가는 세상
“더 이상 학습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과 응용에 관한 것이지요. 정보를 얻는 방법도 달라질 겁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기업 뉴럴링크의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 좋은 예입니다.”
2019년 7월, 뉴럴링크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 기술을 공개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뇌에 전극을 이식해 무선으로 컴퓨터와 신호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생각만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작동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 아직은 실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머지않아 일상에 들어올 기술이다. 이처럼 세상을 빠르게 바꾸는 첨단 기술은 일자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전문 직업인 인맥 SNS 링크드인이 발표한 ‘2020 유망 직종 보고서’에서 인공지능 전문가를 떠오르는 직업 1위로 선정했다. 그다음으로 로봇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풀스택 엔지니어, 서비스 운영 관리 엔지니어가 뒤를 이었다. 대부분이 과학기술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다. 이러한 미래 직업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현재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단순히 과학기술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구분하는 분석적 사고 능력, 솔루션을 찾아내는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미래지향적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미래에도 여전히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 있다. 그중 박영숙 대표가 꼽는 것은 타인과의 협업 능력이다. 성공하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국내 교육 환경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덕목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변을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고 여기는 아이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는 조별 수업을 할 때 모든 조원이 같은 점수를 받습니다. 내가 100점을 받아도 다른 조원이 40점을 받으면 함께 70점이 되는 것이지요.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면 다른 아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협업을 통해 개인이 지닌 능력보다 더 큰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송파구는 일자리 창출과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많은 힘을 쏟는 지역이다. 박영숙 대표는 특히 미래지향적 교육을 이끌어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4차 산업혁명시대형 인재, 일명 ‘메이커(maker) 교육’이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나가 도전하고 느끼십시오.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직접 경험하며 찾아낸 ‘내가 가슴 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유엔미래포럼 박영숙 대표는 주한 영국대사관과 호주대사관에서 30여 년간 근무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래예측 겸임교수와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미래 연구 싱크탱크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한국 지부 유엔미래포럼 대표로 세계 갈등과 문제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매년 발간하는 〈세계미래보고서〉가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미래보고서 2020〉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