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을 보았던 두 천재를 소환한 영화가 있다. 중국과 다른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꿈꾼 세종과 비상한 손재주로 세종의 꿈을 실현한 장영실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 〈천문〉은 빛나는 과학적 성과 외에도 미처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에 색다른 상상력을 더한 팩션(faction) 사극이다. 새로운 이야기에 걸맞은 영화적 구성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서사의 처음과 끝에 세종 24년에 발생한 안여 사건(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고 제작을 감독한 장영실이 파직당한 일)을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플래시백 기법으로 세종과 영실의 만남 그리고 발명에 얽힌 당대의 정치 상황을 집어넣어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낮에만 시간을 볼 수 있는 해시계에서 진일보해 밤에도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自擊漏)가 독창적 발명품으로 칭송받는 데 비해, 명나라와 다른 독자적 역법을 만들기 위해 별자리의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와 간의대(簡儀臺)는 사대의 예를 따르기에 급급하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불온한 발명품으로 취급받는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 함께 별을 바라보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문풍지에 별자리를 그려 인공적 방법으로라도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장면이 다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군신 관계를 초월한 우정과 연대 의식을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여 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마주한 국문(鞫問), 생사를 앞두고 벌이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애틋한 배려와 의리를 보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서로가 서로에게, 나아가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강대국 명의 압력 속에서도 독자적인 시간과 역법을 가지려 고군분투한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부각시킨 영화 〈천문〉은 영어 제목 ‘Forbidden Dream(금지된 꿈, 억눌린 꿈)’이 암시하듯 이들이 공유한 꿈에 어떤 문제가 끼어든 것은 아닌지, 현재 우리의 꿈을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글 윤희윤
〈이 영화 함께 볼래?〉,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