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은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영웅 3인방이다. 원더우먼은 1970년대 등장한 린다 카터 주연의 드라마로만 추억할 뿐 영화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라마 이후 40년 만인 2017년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이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려 화제를 모았으나, 후속작 〈원더우먼 1984〉는 주제 의식은 돋보였으나 액션이 형편없다며 호불호가 갈렸다.
〈원더우먼〉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전쟁의 신 아레스에 대적해 죽을힘을 다해 맞서야 하니 동선이 크고 액션이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원더우먼 1984〉의 배경은 1984년 미국에 있는 쇼핑몰과 백악관 등 내부 공간이 주 무대이고, 빌런 또한 욕망의 화신으로 미쳐 날뛴다 해도 무기를 들지 않은 개인에 불과하다. 전작에서 사용한 창과 칼은 아예 보이지 않고, 진실의 올가미와 황금 갑옷 같은 방어용 무기만 등장할 뿐이다. 액션의 분량과 강도는 바로 이런 시대 배경과 서사의 차이에서 달라진 것이다.
〈원더우먼〉의 흥행으로 숨을 고른 패티 젠킨스 감독은 후속작 〈원더우먼 1984〉의 각본과 각색, 제작까지 참여해 입지를 넓혔다. 외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여성주의 관점에서 외적인 전투 능력과 스펙터클보다는 내적 각성으로 평화를 지켜내는 이야기에 공들인 것으로 보인다. 배우 갈 가도트는 2004년 미스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서 외형적 존재감을 뽐내며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젠킨스 감독의 〈원더우먼 1984〉에서는 내면의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
캐릭터의 탄생에도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원더우먼 캐릭터를 만든 이의 본업은 만화가나 작가가 아닌, 심리학 박사이자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윌리엄 몰턴 마스턴 교수다. 원더우먼의 상징적 무기인 진실의 올가미와 거짓말 탐지기의 연관성이 궁금하다면 마스턴 박사의 전기 영화 〈원더우먼 스토리〉(2017)에서 확인해보길 권한다.
글 윤희윤
〈이 영화 함께 볼래?〉,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