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송파구에 자신의 베이커리를 연 뒤 오금동 사옥을 짓기까지 제빵 인생 46년을 걸어왔다. 파티시에로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며 이제껏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골 고객이 만들어준 ‘백년가게’
오금동에 위치한 ‘이낙근찹쌀떡베이커리’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인증하는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인증하는 가게다. 말 그대로 100년 이상 존속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근의 주민들이라면 이낙근 대표의 베이커리를 모르는 이가 없다. 베이커리 매장과 카페, 제과제빵실, 찹쌀떡 전문 제조실, 사무실과 직원 휴게실까지 갖춘 4층 건물의 사옥을 지은 것은 2015년이다. 1988년 압구정동에서 국내 최초로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고, 1990년에 송파구에서 자신만의 베이커리를 열었다. 압구정동의 단골손님들이 그를 알아봤고, 또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렇게 고객들은 이낙근 파티시에의 빵을 꾸준히 찾았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고객의 입맛은 정확하다. 한결같은 맛과 건강한 빵을 만들기 위한 노력, 다른 매장과 차별화한 제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 백년가게 현판.
▲ 매장 전경.
열여섯 살에 시작한 제과, 이제는 아내와 딸이 함께
어려운 집안 살림에 자립하고자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무작정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숙식을 제공하던 남대문 인근의 유성당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제과 기술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던 그 고된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을까 궁금했는데, 이낙근 대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제과일이 적성에도 맞았고, 이렇게 해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다만 결혼한 후에는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하는 일 때문에 아이들을 친척 집에 맡겨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자란 딸이 이제는 사위와 함께 베이커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갓 구워낸 따끈한 빵을 딸이 한 번도 먼저 먹어본 적이 없어요.” 구워낸 빵은 손님을 위한 것이고, 아빠가 매일같이 땀 흘리며 만들어낸 것이기에 덥석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손녀딸에게만은 너그러운 할아버지인데, 지금도 딸은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먹자”고 말한다. 아내도 힘든 시간을 함께했다. 단체 간식으로 제격인 찹쌀떡을 상품화한 후 이를 홍보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관광버스에 올라 맛을 선보이기도 하고, 사무실에 찾아가 떡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노력 끝에 찹쌀떡은 이곳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 건강한 재료로 만든 찹쌀떡.
제품에 대한 자신감, 도전 정신 그리고 잃지 말아야 할 겸손함
이낙근 대표는 빵에서만큼은 도전 정신을 잃지 않았다. 2000년대 접어들어 쌀로 만든 빵이 인기를 모을 때 찹쌀떡을 생각해냈다. 100%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며 찹쌀에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 저가당 제품이다. 판매할 수량만큼 매일 만들어 신선함을 유지한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먹은 추억의 옥수수빵은 옥수수 함량을 90%로 높여 건강식으로 선보인다. 제품에서만큼은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만, 과분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 것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50여 명의 직원이 먹고살 수 있는 기업을 만들자고 생각해 사옥을 지었다. 매장보다 더 널찍한 작업실을 만들면서 자신은 누리지 못한 쾌적한 근무 환경을 조성했다. 남들처럼 해서는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남들보다 더 노력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이낙근 파티시에의 성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긍정적 마인드가 100년 이상 지속되는 동네 빵집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직원들과 함께 빵을 만드는 이낙근 파티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