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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금 이 영화] 〈만추〉 클리셰와 신파를 걷어낸 결 고운 사랑의 풍경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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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추〉 포스터

탕웨이와 현빈 주연의 영화 〈만추〉(2011)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를 리메이크한 다섯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비운의 여주인공, 낙엽으로 표현한 늦가을, 격정적 사랑 등 반복해온 클리셰(clich′e: 판에 박힌 듯 쓰는 진부한 표현)와 신파를 걷어낸 것도 칭찬감이다.

〈만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시간’이다. 죽어버린 시간을 살던 여자와 돈 받고 시간을 파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폭력에 못 이겨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고 형을 살던 애나(탕웨이)는 어머니의 장례를 명목으로 72시간의 휴가를 얻는다. 7년 만의 외출, 집으로 향하는 시애틀행 버스 안에서 차비를 빌리는 훈(현빈)을 만난다. 훈은 돈을 갚을 때까지 지니고 있으라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맡긴다.

시계라는 소품이 상징하는 시간과 시애틀이라는 공간은 영화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결 고운 사랑의 풍경을 직조해낸다. 어머니의 유산과 자신의 서명에만 관심 있는 가족과 7년 전 자신을 배신한 첫사랑을 만나 상처가 깊어진 애나는 거리를 배회하다 훈과 재회한다. 훈은 무표정한 애나에게 다가와 오늘 하루, ‘현재’를 즐기자고 제안한다. 시장 통 좁은 골목과 그리스식 레스토랑, 문 닫는 놀이공원, 한적한 상가 등은 안개처럼 스미는 사랑의 과정을 점진적으로 보여준다.

놀이공원 뒤편에서 범퍼카를 타고 놀던 두 사람은 맞은편에서 사랑싸움을 하는 연인을 발견한다. 훈은 장난삼아 더빙을 시작하고, 이를 무심히 지켜보던 애나도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더빙에 참여한다. 그간 버스 안과 레스토랑에서 마지못해 짧은 대답만 하던 애나가 스스로 말문을 여는 순간이다. 날이 저물어 지하상가에 도착한 둘은 서로를 응시하며 대화를 나눈다. 영어로 현재 처지를 말하던 애나는 중국어로 그간의 사연을 말한다. 상대의 표정과 눈빛을 살피며 “하오(好: 좋네요)”, “화이(坏: 좋지 않네요)”로 추임새를 넣는 훈의 모습이 진지해진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애나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와 생기가 돈다.

영화 〈만추〉는 사랑이란 결국 소통의 시간을 나누는 것임을, 하루라는 시간 속 현재(present)는 서로에게 선물(present)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만추〉는 김태용 감독과 배우 탕웨이를 부부의 연으로 이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윤희윤
윤희윤
〈이 영화 함께 볼래?〉,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저자

송파소식 2020년 09월호
송파소식 2020년 09월호
  • 등록일 :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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