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디자인은 도시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며 도시의 정체성과 가치를 전한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개막했다. 이에 따라 지방정부는 타 도시와 구별하기 위한 상징으로서 휘장을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당시 개발된 휘장은 주로 도시의 자연환경을 표현해 지역별로 비슷한 이미지가 많았고, 시민과 소통하기 위한 브랜드 개념보다는 도시 관리 차원에서 도로 사인, 환경 시설, 행정 업무 등에 적용하는 보증 마크 개념이 컸다. 2000년대 들어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도시도 하나의 브랜드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도시 휘장으로는 차별화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슬로건 형태의 ‘도시 브랜드’를 개발하게 된 것. 그 시작은 2003년 서울시의 ‘하이서울(Hi Seoul)’ 브랜드 개발이다. ‘하이서울’ 이후 간단한 영어 단어를 결합한 도시 브랜드가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도시 브랜드 개발에 대한 반성과 한계점을 인식하고 도시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계다. 오랜 시간 층이 쌓이고, 다양한 유·무형 콘텐츠가 만나고, 다채로운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어우러진 것이 도시다. 이렇다 보니 디자인도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해 도시의 여러 가지 자원을 매개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로 유연하게 확장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의 디자인이 좋은 사례다. 포르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도시의 면면을 지니고 있다. 도시의 다양성을 하나로 개념화하지 않고 그 다양성 자체를 담을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도시를 나타내는 브랜드 로고 개발 시 Porto라는 도시명 옆에 간결한 마침표 하나만 더했다. 이는 포르투를 하나로만 정의할 수 없으며, 포르투는 그저 포르투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간결하고 함축적인 포르투의 디자인은 다양한 이미지로 확장하고 다양한 디자인 요소와 결합해 사용됐다. 간결한 브랜드 로고와 어울리도록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는 아이콘을 여러 개 개발하고, 포르투의 대표적 산업이던 도자기 타일 산업을 연상케 하는 타일형 그래픽 패턴을 개발했다.
도시의 디자인은 물리적 공간으로서 도시를 탈공간화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시를 경험하게 해준다. 도시를 알리거나 도시를 추억하는 관광 기념 상품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1970년대에 개발한 뉴욕의 ‘I ♥ NY’처럼 뉴욕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널리 인식되거나 다양한 관광 상품으로 파생될 수 있다.
디자인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도시뿐만 아니라 자치구도 디자인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한 서울시 송파구도 도시의 CI(City Identity) 디자인 체계를 새롭게 개발했다. 1990년대에 개발한 기존 CI 디자인은 송파를 의미하는 소나무를 구상적(direct)으로 표현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지금의 송파 이미지와는 거리감이 있었고, 또 소나무 한 그루로는 현재 송파의 다양한 가치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결국 송파라는 이름 자체로 송파를 상징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개발한 CI 디자인은 송파의 ‘ㅅ’을 간결하고 추상적(abstract)인 이미지로 표현한 디자인이다. ‘ㅅ’ 심벌은 ‘서울을 이끄는 송파’라는 송파의 비전을 담고 있으며, 송파의 다양한 가치를 매개하기 위해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변화할 수 있다. 앞으로 새로운 CI 디자인이 시민과의 다양한 소통 접점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고민을 더한다면 시민에게 공감받고 외부인의 관심을 이끌며, 송파구의 다채로운 매력과 가치를 알릴 수 있을 것이다.
글 정규상
(협성대 시각조형디자인학과 교수, 송파구 도시 브랜드 개발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