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영(잠실동)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오늘이 몇 일인지, 무슨 요일인지, 무슨 약속이 있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은 그런 날들 말이다.
그림일기를 쓰더라도 딱히 제목을 적기 어려운 날들이 올해의 반을 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즐겁다.
눈뜨자마자 그림 그리기, 블록 놀이, 옷방 뒤져서 역할 놀이 등을 하며 밥 먹을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놀기에 바쁘다.
아침밥을 다 먹고 전날 마트에서 사 온 수박을 먹고 나서 한쪽에 모아둔 씨앗을 보며 여섯 살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이 씨앗 심으면 수박이 열려요?”
“그럼, 수박씨 심으면 수박이 열리겠지? … 수박이 열릴까?”
나는 말끝에 자신이 없어졌다. 예전 같으면 “어린이집 늦겠다. 빨리 나가자”고 아이를 준비시켰을 텐데 오늘은, 아니 당분간은 아무 데도 나갈 곳이 없었다.
집요하게 묻는 딸의 질문에 심어보자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집에 있던 빈 화분에 색을 칠하고, 흙을 깔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었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창가 앞에 두었다.
또 그저 그런 여러 날이 지났다. 생명이 움트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였고, ‘아이가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하던 중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나는 블라인드를 열다가 우연히 떨어뜨린 시선에 눈이 멈추었고,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 만에 내 입에서 나오는 즐거운 고음이었는지 모른다. 부스스 잠을 깬 딸이 나와 놀라서 한참을 쳐다본다.
“와, 진짜 새싹이 나왔네!” 하며 신기한 듯 본다. 사실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바로 나였다.
씨앗을 심고 싹이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이 왜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던지…. 그동안 너무 당연하지 않은 이 상황이 힘들었나 보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도, 누군가의 방문도 꺼려지던 요즘, 이 작은 생명이 우리 집에 날아온 반가운 손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평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수박까지 먹는 여유는 없었을 텐데….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수박을 먹고 그 씨를 심어보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않았을 텐데….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씨앗이 싹을 틔우는 사실에 이처럼 놀라워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당연함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당연한 것이 감사한 일이 된 지금의 시간도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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