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본능을 충족하면서 즐거움도 얻는 미식이 인간 역사에서 각광받는 건 당연하다.
글 박찬일(요리 연구가, 칼럼니스트)
의식주는 인간의 보편적 생존 조건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은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 쾌락이다. 즐거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행복이라고 바꿔 말해도 된다. 인간사의 기쁨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즐거움, 친구를 사귀는 기꺼움, 그 밖에 많은 인생의 순간들이 즐거움의 영역이다.
우리는 진화하면서 음식의 맛에 대해 민감해졌다. ‘맛이 이상한 것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경험이 쌓여 인류의 음식사가 생겨났고, 그 경험을 통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즐겁다!’는 감동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음식은 쾌락이라는 점이 구체화되고, 쾌락은 인간사의 모든 고민을 집대성한 철학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것을 18세기 이후에 서양에서 학문화했고, 이를 ‘미식(gastronomy)’이라고 부른다. 대학에 강의가 개설되고 미식학 박사도 배출됐다.
그런데 쾌락은 비용이 든다. 즐거움을 얻자면 돈이 드는 것인데, 그 비용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드라이브의 기쁨을 얻기 위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를 산다. 기름을 넣고, 보험도 든다. 그렇다면 가장 저렴한 쾌락은 무엇일까? 바로 먹는 기쁨이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본능을 충족하면서 즐거움도 얻는 미식이 인간 역사에서 각광받지 않을 수 없었다.
미식은 원래 거창한 것이었지만, 이제 누구나 사회적 행동으로 미식을 찾는다. 박사 학위를 딸 의도는 없지만, 다들 미식에 해박해진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의 열풍은 대부분 미식과 여행이고, 여행의 절반은 물론 미식이다. 미식이란 말이 불편하면 그냥 먹방 취미라고 해도 된다. 이런 현상이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바람직한 면이 더 많다.
미식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 맛있는 것은 누군가와 나눌 때 더 행복해지는 인간의 습관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좋은 시간을 나누기 위해 우리는 미식을 수배하고 검색한다. 그런 과정 자체가 행복한 일상이다. 사회적 관계에 음식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맛집을 잘 아는 이들이 인기가 있었다. 이제는 그런 깊은 수고가 없어도 검색을 통해 입소문 난 식당을 누구나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숨은 맛집’이라는 희한한 용어까지 등장했지만 말이다. 자, 모두 즐거운 미식 생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