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의 의미와 기념 방식
초등학교 2~3학년 때였을까요, 기억조차 희미한 어느 해에 현충일(顯忠日)을 앞두고 학교에서 ‘국기 게양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문구점에서 태극기를 구입하고, 태극기 게양법을 배운 뒤, 직접 게양하고 그 내용을 일기장에 기록하는 숙제였죠. 빨리 숙제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태극기를 내거는 일에만 집중하던 저에게 할머니께서 “현충일에는 태극기를 다르게 달아야 하지 않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현충일은 국기를 게양하는 보통의 날들과는 다른 의미가 있고, 그 때문에 조기(弔旗)를 게양한다는 점을 말이죠.
원래 현충일은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날이었는데, 1965년에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부터 순국선열을 함께 추념(追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6월 6일이 현충일로 지정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로부터 농경 사회에서는 24절기 중 보리를 수확한 후 새롭게 모내기를 시작하는 날인 망종(芒種)을 택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에게 제사를 지내며 예를 갖추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고려 현종 5년(1014) 거란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영웅들에게 망종에 맞추어 제사를 지낸 기록이 대표적이죠. 세월이 흘러 6·25전쟁이 휴전된 후 전쟁 당시 사망한 전사자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1956년 현충기념일을 지정할 때, 이 망종이라는 절기에 맞추어 지정한 것입니다.
현충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다른 국경일(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는 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합니다. 대통령 이하 삼부요인과 국민은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6월 6일 오전 10시 정각부터 전국적으로 1분간 사이렌이 울리며 묵념을 합니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조기를 게양합니다. 조기는 기를 통해 국가나 단체, 개인 등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기례(旗禮)입니다. 기를 최상위까지 올렸다가 내린 뒤 깃대의 절반 쪽에서 멈추는 것이 관례지요.
휴일 중 하루로 잊히지 않기를
그런데 요즈음에는 예전같이 국기를 내걸고 나라에 특별한 하루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에 대한 이해, 특히 현충일과 다른 국경일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희미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 게양을 지키지 않는 관공서가 있어 언론을 통해 질타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으며, 발코니 확장·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주거 공간이 변화해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풍습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충일이 왜 국경일이 아니라 국가 추념일인지, 왜 조기를 내걸어야 하는지 모르고 ‘하루 더 쉬고, 학교나 직장에 가지 않는 날’ 정도로 인식하는 ‘이해의 부족’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이라도 도망갑시다. 이러다 우리 다 죽소!”라고 울부짖는 아들 승구(성유빈 분)를 향해 승구의 아버지는 “이놈아, 우리가 도망가면 여긴 누가 지키냐!”라고 호통치며 총에 붙일 불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다 미군이 쏜 총탄에 맞습니다. 세월이 흘러 경위원 총관이 된 승구(최무성 분)는 일제의 군대 해산에 맞서 싸우는 시위대를 도우며 한 명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생을 내던집니다. 또한 마지막 회에서 의병장 황은산(김갑수 분)이 일본군에게 포위된 절망적 상황에서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두려웠지만 끝까지 싸운 우리(의병)가 있었다는 점을 남겨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마지막이 될 의병 진격을 지시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렇게 이름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헌신 속에서, 그들이 남긴 희생의 발자취 속에서 흘러왔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혹은 배운 학교에서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발자취가 대한민국의 초석을 세우기 위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6월 6일 현충일! 올해 현충일은 우리나라를 위해 이렇게 헌신했을,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 영웅들, 이름이 남지 않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추념하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요?
글 윤영선 / 역사 교사
현재 정신여자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