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균(잠실4동)
지난해 12월, 23년 8개월간 내 인생의 일부분이던 회사를 퇴직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회사를 다니며 1년 동안 안식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결혼도 하고, 큰 아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무사히(?) 일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회사였다.
퇴사를 생각하며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았다. 출근길에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곤 했는데, 어느 날 아이가 너무 울어 내 옷에 구토를 해 재킷을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출근했던 일, 금요일 저녁 아이를 시댁에서 데려오는데 차 뒷좌석에서 멀어지는 할머니를 보며 “할미~ 할미~” 하며 울었던 일 등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무척이나 고되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때는 원 없이 자고, 퇴근한 후 반듯하게 앉아서 여유 있게 저녁을 먹어보는 사소한 일상이 간절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시간이 지나 이제 큰아이 열세 살, 작은아이 열한 살이 되었다. 가족들(특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두 아이가 너무나도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었고, 아이들이 차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주말엔 늦잠도 자고 퇴근 후 여유로운 시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생긴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불안감마저 느끼기도 했다. 서양 시 한 편의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 이 또한 정말 지나갔구나.
이렇게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은 앞으로의 내 인생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해준 귀한 시간이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 성장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이러한 결정에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업주부로서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불안해했고, 매일 보던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부분도 꽤 섭섭해했다. 나의 퇴사 결정을 일언반구의 반감도 없이 지지해준 사람은 오로지 남편 한 사람뿐이었고 큰 힘이 되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이제 어언 한 달이다. 매일 피아노 치고, 운동하고, 일기 쓰고, 둘째 공부도 봐주는 등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워킹맘 특유의 강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회의가 많은 월요일 전날인 일요일은 초저녁부터 예민해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심해진다. 또 아이들 학교 공부도 매일 저녁 엄마가 세워둔 계획에 맞게 해야 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의 친구 얘기, 학교 얘기는 주말에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얘기에 웃고 떠들다 오늘 못 한 과제는 내일로 미룰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일, 무엇보다 익숙한 생활을 버리고 다른 인생에 도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은 조금 아끼고 덜 쓰려고 한다. 올가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평소 관심 있던 특수교육을 공부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예정이다.
2022년 나의 인생 2라운드를 이렇듯 소박하지만 위대하게 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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