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아이는 먼 길을 떠납니다. 약 700리, 무려 280km에 달하는 길을 걷고 또 걸어 아이가 도착한 곳은 만주에 있는 신흥무관학교.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학교였죠. 학교 관계자를 만난 아이는 자기도 나라의 독립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입학시켜달라고 조릅니다. 이 범상치 않은 아이의 이름은 김산.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이자 만주와 베이징, 광저우를 누비며 일제와 맞서 싸운 그 김산입니다. 1905년생인 김산은 중학생이던 1919년, 3·1운동을 목격합니다. 우리 민족 모두가 남녀노소 상관없이 거리로 나서 독립을 외치는 그 열정과 용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결심합니다. ‘나도 나라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이 모습을 통해 당시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3·1운동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3·1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시나요? 무려 200만 명입니다. 당시 한국의 총인구가 약 2000만 명이었으니 평균 5인 가구로 쳤을 때 한 집에서 한 사람은 거리로 나가 만세를 부른 것이죠.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자신들의 외침이 100여 년 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이토록 큰 울림으로, 이토록 큰 파장으로 퍼져나갈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100여 년 전 광장에 섰던 그 사람들의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그 시대의 아무개들,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독립된 나라와 민주주의를 안겨준 분들이라는 건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일제의 차별과 멸시, 그리고 좌절과 고민의 시간 끝에 그들은 마침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희망은 그 어디도 아닌 내 안에 있다고, 내가 바로 희망이라고 말입니다. 나라의 독립은 소수의 헌신적인 애국자들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비록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나 하나하나가 모일 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결국 희망은 자신에게 있음을 이 땅의 아무개들은 깨달았던것 아닐까요?
유관순 열사의 삶을 다룬 영화 〈항거〉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3·1운동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모진 고문을 당하며 죽음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 배식을 담당하던 수감자가 묻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하죠. “그럼 누가 합니까?” 만세를 외친 아무개들의 마음도 이렇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내가 아니면, 그럼 누가 하겠는가’ 그 마음이 200만 아무개가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목 놓아 만세를 외치게 만들었다고요.
최태성, 〈일생일문〉(생각정원) 중에서
글 최태성 [역사 강사, 작가]
EBSi 한국사 강사이자 작가, EBS 역사교육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KBS 〈역사저널 그날〉, tvN 〈어쩌다 어른〉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을 위한 역사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