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석촌동)
1994년, 올해만큼이나 무더웠던 그해 여름, 지리산 산골짜기의 작은 시골 마을 외가댁에는 지금의 나의 부모님처럼 젊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셨고, 지금의 나처럼 젊은 부모님이 계셨고, 지금의 나의 아이들처럼 어린 내가 있었다.
아침이면 우리 세 자매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할머니의 고무신을 신고 아빠를 따라 집 앞 개울가에서 세수를 했다.
돌아오는 길엔 떨어진 추자를 주워 살을 갈아 돌로 깨 먹었는데 참으로 고소한 맛이 났다.
지게에 소여물로 줄 짚을 잔뜩 싣고 할아버지가 오시면 외할머니의 소박한 아침상을 맞았다.
낮에는 지리산 동쪽 기슭 산 아래로 흐르는 강에 놀러 갔다.
수영을 못 하고 겁이 많던 우리 세 자매는 물가에 앉아서 고둥(다슬기)을 잡으며 놀았고, 마을에 사는 또래 친구들은 멋진 점프 실력을 선뵈며 수영을 곧잘 했다.
숫기 없었던 서울 깍쟁이 딸 셋은 마을 친구들과 친하게 놀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서로가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저녁에는 잡아온 고둥으로 외할머니께서 국을 끓여주셨다.
고둥이 우러난 초록색의 시퍼런 국을 무슨 맛으로 먹을까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가끔 그 맛이 그리워진다.
밤이면 마당 평상에 앉아 별을 보고 풀 냄새를 맡으며 수박을 먹고, 어른들의 말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투리 말씀을 들으면 잠이 잘 왔다.
2021년, 유난히 덥고 긴 올해 여름, 마음껏 여름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고 지치지만, 내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며 힘을 내어본다.
지금 이곳에는 그날의 부모님처럼 어른이 된 내가 있고, 그날의 어린 나처럼 지켜줘야 할 나의 아이들이 있다.
“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곳에서 평안하시죠?
행복한 여름날의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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